[알아두면 쓸모 많은 법률상식] 혼자서 복권 사고 술 마시다 농담조로 말해 ‘무효’

입력 : 2020-01-15

알아두면 쓸모 많은 법률상식 (18)로또 당첨금 나눠주겠다는 약속

증여계약 인정해도 돈 받기 어려워 서면계약 아니라 한쪽서 해제 가능

갹출해 구입했다면 일부 지급해야



A씨와 B씨는 한동네 사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둘은 저녁에 술을 마시다가 “로또에 당첨되면 서로 1억원씩 주기로 하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보름 뒤 A씨가 로또복권 1등에 덜컥 당첨되고 말았다. B씨는 약속대로 “1억원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A씨는 수백만원을 지급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다. 사이가 틀어진 두 사람은 1억원을 두고 결국 법정에까지 서게 됐다.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로또복권이 당첨되면’이라는 가정하에 약속을 남발한다. 그 약속은 유효할까. 만일 농담이었고 상대도 그렇게 여겼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면 무효다. 하지만 상대가 그 약속을 진심으로 여겼다면 효력이 있는 약속이 된다. 민법(제107조)도 진의 아닌 의사 표시라도 원칙적으로 효력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A씨는 B씨에게 1억원을 지급해야 할까. 법원은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두 사람이 1억원 지급 약속을 한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복권의 구입 시기·방법 등 계약조건이 논의되지 않았고 ▲술을 마시다가 잡담이나 농담조로 대화한 것으로 보이는 점 ▲로또를 함께 구입한 것이 아니라 A씨가 혼자 구입한 점 등으로 볼 때 당첨금 지급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의 약속을 설사 증여계약(한쪽이 상대방에게 무상으로 재산을 주기로 하고, 상대가 승낙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으로 인정하더라도 B씨가 당첨금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면으로 하지 않은 증여계약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해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증여를 경솔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고 증여 의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다. 결국 B씨는 재판에서 지고 말았다.

또 다른 복권 당첨금 분배소송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있었다. 직장 상사 C씨에게 복권 심부름을 해주는 조건으로 당첨금 20%를 받기로 했다는 D씨는 재판까지 갔지만 패소판결을 받았다. C씨는 “그런 약속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고, D씨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뚜렷한 서류도 증인도 없었다. 법원은 “당첨금을 나눠주기로 했다는 약정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D씨의 항소로 진행된 항소심에서는 두 사람이 직장동료 사이인 점을 감안해 법원이 타협안을 제시했다. D씨가 사다준 복권으로 C씨가 1등에 당첨된 것은 맞으므로 1500만원 정도를 지급하라고 제의했고 양쪽이 수긍해 조정이 성립됐다. 어쩌면 두 사람 사이에 당첨금 분배와 관련된 약속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증거가 없는 이상 법원으로서도 섣불리 D씨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이와 달리 두 사람이 매주 1만원씩 갹출해 복권을 구입한 뒤 1등 당첨이 된 사람이 10%를 상대에게 지급하기로 한 약속은 유효하다는 판결도 있다. 법원은 두 사람이 일정금액을 함께 냈고 지속적으로 복권을 구입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당첨금 지급약정이 성립한다고 판단하고, 계약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람 사이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도의상으로도 그렇지만 법으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제는 약속을 둘러싸고 의견이 갈릴 때 진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그런 약속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사였는지를 둘러싸고 분쟁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사회생활에서 계약이나 약정을 할 때 문서로 남기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김용국<법원공무원 겸 법률칼럼니스트, ‘생활법률 상식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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