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글탱귤 생글생꿀, 제주허니와인

입력 : 2020-06-26

 

와이너리 기행 (9)제주허니와인

감귤 착즙주스·꿀 2대 1 비율로 섞어 저온 발효 청징·숙성 작업 1년간 반복…‘오어’ 탄생

영롱한 금빛에 한잔, 은은한 감귤 향에 두잔 너무 달지 않아 매력적…상큼한 신맛 뒤따라

아로니아 더한 ‘오어 루비’ 스파클링도 주목

멜로멜이라는 이름의 술이 있다. 과일과 꿀을 섞어 발효시킨 일종의 와인이다. 유럽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먹어왔지만 우리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이 술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감귤과 꿀로 와인을 만드는 곳, 제주의 제주허니와인이다.



제주의 서쪽,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이맘때면 온통 초록으로 빛나는 감귤밭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 안에 멜로멜을 만드는 와이너리 제주허니와인이 있다. 해가 질 무렵이면 불이 들어오는 문패에 영어로 ‘Meadery(미더리)’라고 적혀 있다. “멜로멜처럼 꿀을 넣어 발효시킨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를 미더리라고 부른다”는 것이 이장호 대표의 설명이다.



감귤과 꿀의 만남, 황금빛 ‘오어’

미더리 제주허니와인에서 만드는 와인의 이름은 <오어>다. 알파벳으로 ‘or’라고 쓰는데 프랑스어로 금을 뜻한다. 영어에서도 명사로 쓰일 때는 ‘금빛’이라는 의미가 있다. 색깔이 황금빛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오어>는 감귤과 꿀을 2대 1로 섞고 소량의 물을 첨가한 뒤 효모로 발효시킨다. 감귤은 제주개발공사를 통해 착즙주스 형태로 공급받아 사용한다.

“와인 한병을 100으로 치면 감귤이 60, 꿀이 30, 물이 10 비율로 들어가요. 그러니 말 그대로 감귤과 꿀을 마시는 셈이죠.”

재료를 섞고 효모를 넣은 뒤 10℃ 안팎에서 한달간 발효한다. 와인의 적정 발효 온도는 대개 20~23℃다. 효모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온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저온 발효를 선택했다.

최정욱 소믈리에는 “저온 발효를 하면 향이 더 잘 표현되기 때문”이라며 “다만 발효 온도가 낮으면 자칫 효모가 죽어버릴 수도 있어 저온 발효는 기술과 시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발효가 끝나면 1차 청징에 들어간다. 청징은 바닥에 가라앉은 과일 찌꺼기나 효모 등 발효 부산물들을 걸러내는 작업이다. 대개 와이너리들은 청징과 함께 와인을 미세한 필터에 통과시키는 필터링도 한다. 그래야 더 맑고 깨끗한 와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청징만 한다. 필터링 과정에서 원재료 특유의 향과 맛이 손실될까 걱정돼서다. 대신 청징을 여러번 해서 필터링 없이도 깨끗한 와인을 완성한다.

청징 다음은 숙성이다. 숙성을 시작한 지 한달 후 2차 청징, 다시 숙성, 또 청징의 과정을 거치며 1년 세월을 보내고서야 감귤과 꿀 혼합액은 비로소 와인이 된다.

잔에 따르면 영롱한 노란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눈으로 마신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테다. 살살 잔을 흔들며 코끝에 가져다 대면 은은한 감귤 향이 스친다. 귤과 꿀로 만들었다니 달콤하겠지, 상상하며 입에 머금으면 의외로 달지 않다. 기분 좋을 만큼의 단맛 뒤에 상큼한 신맛이 따라온다. 꿀꺽 넘기면 알 듯 말 듯한 쓴맛이 목구멍으로 미끄러진다. 매콤한 닭볶음탕 한그릇 곁들이면 이 여름, 더위 따라 집 나간 입맛 찾아오는 데 더할 것이 없겠다.

 

이장호 제주허니와인 대표(오른쪽)와 최정욱 소믈리에.


지역을 가장 잘 표현하는 와인

이 대표가 멜로멜을 만든 지는 올해로 3년째다. 서울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와인을 만들겠다고 제주로 귀촌했다. 귀촌하기 전 소규모로 와인 특강을 할 정도로 이미 와인에 관해선 전문가였다.

“제주로 오기로 했으니까 제주에 어울리는 와인을 만들자 생각했습니다. 제주 하면 떠오르는 게 감귤이잖아요. 게다가 겨울이 춥지 않아 사철 꽃이 피는 제주는 꿀을 생산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감귤과 꿀로 와인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당연히 제주산 감귤과 꿀만 사용하고 있고요. 게다가 옛날부터 제주는 대표적인 신혼여행지, 허니문의 성지 아니겠어요? 감귤 들어간 허니와인, 이야기감으로도 딱 좋아요.”

꿀로 만든 와인에 대한 이 대표의 개인적인 호감도 한몫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와인이고 특유의 향과 맛도 좋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었다. 얼마나 다양한 꿀 와인이 있는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도 싶었다. 지난해 레드와인 격인 <오어 루비>를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양에는 레드와인·화이트와인 외에 블랙와인도 있습니다. 블랙커런트 같은 검은색 베리류와 꿀로 만든 와인이에요. 그걸 만들려고 여러가지를 시도했죠. 그러다 만들어낸 게 <오어 루비>입니다.”

이 대표가 사용한 것은 아로니아다. 처음에는 아로니아와 꿀로만 와인을 만들었는데 쓰고 떫은 아로니아 맛이 너무 강하게 남았다.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다 얻은 결론이 감귤을 섞는 것. 감귤과 꿀에 아로니아를 혼합해서 와인을 만들었더니 달콤한 귤 향과 아로니아의 떫은맛이 균형을 이루는 와인이 탄생했다. 원하던 블랙와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새 상품인 만큼 새로운 시도도 했다. <오어 루비>를 스파클링와인으로 만든 것. 감귤과 꿀을 발효시키다가 발효가 거의 다 끝날 즈음에 아로니아를 첨가해서 탄산을 자연 생성했는데 마치 인공 주입한 것처럼 힘 좋고 풍부한 탄산이 생성됐다. 일반 코르크로 막아두면 탄산이 코르크를 위로 밀어낼 정도였다. 강렬한 탄산이 지나간 후 은은한 단맛, 아로니아의 떫은맛이 차례로 입안을 적시는 <오어 루비>는 강렬한 태양 아래 제주 바닷가와 딱 어울리는 맛이다.

 

제주=이상희, 사진=김덕영 기자 montes@nongmin.com

취재협조=최정욱와인연구소(제이엠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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