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 “올리브 고객님, 108호 배정되셨습니다”

입력 : 2020-01-03
카페와 식물 전용 호텔로 운영되고 있는 ‘플랜트호텔 실라’ 전경.

‘플랜트호텔 실라’ 가보니

언뜻 평범한 카페 같지만 반려식물 전용 호텔

장기간 휴가·출장 갈 때 맡겨두면 정성껏 돌봐줘

화분마다 체크인·체크아웃 날짜 기록된 꼬리표 달려 있어 진열대 번호판은 방 호수 의미

재배 전문가, 주 3회 방문 상태 확인 후 치료해주기도
 



‘반려식물’이란 말이 주목받고 있다. 가정에서 키우는 동물을 함께 사는 동반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반려동물’이란 말처럼 식물에도 ‘관상’ 대신 ‘반려’란 말이 붙기 시작했다. 이에 2020년 새해엔 더 자주 쓰고 더 많이 들릴 말, ‘반려식물’의 모든 것을 알아봤다.

 

‘플랜트호텔 실라’의 화분 진열대. 각각의 화분 아래쪽에 보이는 번호판은 호텔에 머무는 식
물에게 배정된 방의 호수 역할을 한다.

“어머, 이거 예쁘다. 파는 거예요?”

서울 강북구 롯데백화점 미아점 1층. 보통 명품 브랜드와 고가의 화장품 매장이 가득한 곳인데, 이 지점엔 초록의 식물이 자라는 공간이 있다. 바로 ‘플랜트호텔 실라’다.

화려하지만 다소 삭막한 백화점 1층에 자리 잡은 녹색 풍경이 눈길을 끈다. 매장은 언뜻 보면 평범한 식물 카페 같다. 한쪽에 다양한 화분이 있고 이를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덕분이다.

“판매하는 건 아니고 고객님들이 맡기고 가신 거예요.”

이곳에 맡겨진 화분은 체크인·체크아웃 날짜가 적힌 종이꼬리표를 달고 있다(오른쪽 〃).


이란근 매니저의 설명이 뒤따른다. 자세히 보니 올리브·백묘국·이레카야자·떡갈고무나무 등 화분마다 작은 종이 꼬리표가 매달려 있다. 거기엔 식물의 이름과 함께 체크인·체크아웃 날짜가 기재돼 있다. 체크인 날짜는 고객이 식물을 맡긴 날, 체크아웃 날짜는 식물을 찾아가는 날을 의미한다. 또 식물 진열대엔 ‘방 번호’가 붙어 있다. 조명 역시 식물재배광이다. 이곳이 흔하디흔한 의류 판매장도, 식물원 카페도 아닌 ‘반려식물호텔’임을 알려주는 증거다.

“보통 일주일 이상의 장기 휴가·출장을 떠나는 분들이 화분을 맡기고 가세요. 식물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젊은 1인가구나 가족여행을 떠나는 50~60대 이상의 분들이 많이 찾고요. 병이나 영양불균형 등으로 시들해진 반려식물을 관리하려고 방문하는 경우도 있어요.”

플랜트호텔 실라에서는 주 3회, 롯데백화점 식물 재배 전문가가 호텔을 찾아 ‘고객’들을 관리해준다. 식물의 상태를 확인해 영양제를 놓거나 병에 걸린 경우 치료를 해주기도 한다. 반려식물호텔의 제안자인 정종견 롯데백화점 미아점장의 배려다.

“핀란드로 출장을 갔을 때 한 의류 브랜드가 반려식물호텔을 운영하는 걸 봤어요. ‘이거다’ 싶었죠. 아직 반려동물에 쏟는 관심만큼은 아니지만, 반려식물시장 역시 점점 성장하고 있잖아요. 사람과 식물이 갖는 유대감이나 환경에 대한 관심·애정도 커지고 있고요. 앞으로 성장할 게 분명한 시장인 만큼 반려식물호텔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우리가 먼저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 자연친화적 의류를 만드는 브랜드에 제안했어요. 다행히 협의가 잘돼서 우리나라 최초의 반려식물호텔이 이곳에 들어선 거죠.”

정 점장에 따르면 반려식물호텔에 대한 고객들의 평가는 그야말로 ‘칭찬 일색’이다. ‘녹색’이 그리운 도시인들에게 소통의 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끼리 만나면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반려동물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랑도 하고 그러잖아요. 반려식물도 똑같아요.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내가 키우는 식물을 자랑도 하고 싶은데 그런 공간이 마련된 거죠.”

이같은 관심은 백화점 매출로도 이어졌다. 롯데백화점 측은 미아점 1층에 호텔이 입점한 지난해 6월 이후 3개월간 반려식물 주소비층인 ‘5060세대’ 대상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 이상 크게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젠 식물이 ‘키우다가 시들면 버리는 존재’가 아니라 아프면 치료하고, 돌봐줘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요. 삶에 이로움을 주는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존재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잖아요?”

김다정,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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