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범상치 않은 맛, 이건 예술이야

입력 : 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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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배꼽막걸리(720㎖)’의 호랑이 그림과 글씨는 이혜인 대표의 아버지 이계송 화백의 작품이다. 350㎖의 ‘호랑이배꼽막걸리’ 미니병의 귀여운 호랑이 그림은 언니인 이혜범씨의 솜씨다.

[우리 술 답사기] ②경기 평택 호랑이배꼽양조장

예술가 가족이 차린 양조장

건강한 지역농산물 사용 고집 고두밥 대신 생쌀 으깬 뒤 발효

3년·5년 숙성 증류주 ‘소호’ 단맛 은은하고 끝맛 깔끔

완숙주 ‘호랑이배꼽막걸리’ 산뜻하고 개운한 맛 강해 

 

현재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양조장은 모두 2000여곳. 그중 민속주와 지역특산주를 빚는 양조장은 1100여곳에 달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이 알고 마시는 우리 술은 기껏해야 10여종이나 될까. 그만큼 직접 지역에 가지 않으면 맛보기 어려운 우리 술들이 부지기수이다.

본 기획을 ‘답사기(踏査記)’로 이름한 건 그래서다. 어떤 곳을 직접 밟아 가보는 것처럼 우리 술의 면면을 톺아본다는 뜻도 있지만, 두발로 걸음해야 만날 수 있는 알려지지 않은 우리 술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 평택에 자리한 호랑이배꼽양조장의 술도 그런 경우다. 이곳에서 만드는 증류식 소주인 <소호(Soho)>는 오직 양조장을 찾은 손님에게만 내줄 뿐, 오프라인 주점·마트는 물론 양조장의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구매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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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56’의 라벨은 ‘술 마시는 동안 항상 봄이길’ 바라는 뜻을 담은 이계송 화백의 ‘상춘’ 작품이다.

5년 숙성 고품격 소주 ‘소호(Soho)’

“<소호>는 정말 힘들게 만드는 술이에요. 우리가 어떻게 이 술을 빚었는지 그 과정을 알고 구매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로지 양조장에 오신 분들에게만 팔고 있어요.”

‘웃는 호랑이(笑虎)’라는 뜻의 <소호>는 호랑이배꼽양조장의 이혜인 대표가 2018년 처음 상품화한 쌀 증류주다. 백미와 발아현미로 원주를 담근 뒤 단식의 상압 증류기로 매 겨울 두세번 술을 끓여 만든다.

눈에 띄는 특징은 5년 세월을 담았다는 점. 보통 숙성 기간으로 3년 정도면 국내 증류식 소주 중에선 가히 오랜 기간 숙성한 고급 술에 속한다. <소호>의 경우 출시 당시엔 1∼2년 기간의 숙성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올들어 5년 숙성의 <소호56(56도주)>과 3년 숙성의 <소호36.5(36도주)> 등 2가지 소주를 판매 중이다.

이 대표는 “<소호>는 70년 된 흙집, 그 안에 들여놓은 항아리에서 우리 사계절의 변화를 수차례 겪은 술”이라며 “같은 기간이어도 스테인리스 통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낸 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증류주는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날카로웠던 향과 맛이 정돈되고 부드러워진다”며 “<소호>는 부드럽고 깔끔해서 초록병 소주를 못 드시는 분들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평소 고도주를 잘 즐겼던 이가 아니라면 높은 도수의 술은 대개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호>는 화하면서도 조화로운 깊이가 있어 높은 도수임에도 맛과 향이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 은은한 단맛에 깔끔하게 떨어지는 끝 맛이 특징이다.

초심자라면 화한 잔향이 경쾌한 <소호36.5(200㎖·3만원)>를, 애호가라면 깔끔함에 깊은 바디감이 더해진 <소호56(500㎖·20만원)>을 권한다.
 

호랑이배꼽양조장은 오래된 한옥을 양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는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해 술을 판매하고 시음할 수 있는 공간도 운영한다.

지역을 말하는 예술가 집안의 양조장

호랑이배꼽양조장이 술을 내놓기 시작한 건 2010년부터다. 이 대표의 부친이자 원로 서양화가로서 일찍이 유럽을 많이 돌아본 이계송씨가 농촌이 잘사는 그 나라들이 부러워 고향이자 함평 이씨 집성촌인 평택시 포승읍에 양조장 문을 열었다. 평소 술을 좋아한 연유도 있지만 지역농산물로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산업으로서 술 빚기를 선택한 것이다. 지금도 술을 빚는 모든 쌀은 포승읍에서 재배한 것만을 사용한다.

“처음엔 배 와인을 만드셨다가 이내 수년간 막걸리 양조를 연구하셨죠. 평택이 배와 쌀 모두 유명하거든요. 예전에 할머니·할아버지께서 방앗간을 운영하셨는데 그때부터 깨진 쌀과 부산물로 가양주를 빚으셨던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게 우리 양조장의 시초인 셈이죠.”

생쌀로 술을 빚는 방식도 이 방앗간의 기억에서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쌀로 빚는 술은 당화와 발효가 잘 일어나도록 증기에 찐 고두밥을 원료로 쓰지만, 호랑이배꼽양조장은 찌지 않고 으깬 생쌀을 누룩·물과 혼합해 40일간 발효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찐 쌀에 비해 발효 기간이 길다. 그 대신 지게미가 적고 산뜻한 맛의 술이 빚어진단다.

이 대표는 2016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술을 빚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 대표를 맡고 언니인 이혜범씨와 양조 과정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이 가족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이 대표는 포토그래퍼(사진작가)로 일했고, 언니는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다. 가족의 예술적 감각은 세련된 술병 라벨(상표)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에 이어 호랑이배꼽양조장의 대표를 맡은 이혜인씨.

청주처럼 맑고 가벼운 ‘호랑이배꼽막걸리’

호랑이배꼽양조장이란 이름은 평택이 호랑이처럼 생긴 한반도의 배꼽 자리에 있어서 그리 지었단다. 이 이름이 고스란히 담긴 <호랑이배꼽막걸리>는 <소호>가 탄생하기 전, 양조장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6.5도의 프리미엄 탁주다. 백미와 현미로 담근 술을 40일간 발효한 뒤 100일 동안 저온 숙성해 만든다. 이런 양조 기간은 다른 프리미엄 막걸리와 견줘도 상당히 긴 축에 속한다. 이는 호랑이배꼽양조장의 술이 제대로 익은, 이른바 완숙주를 지향하고 있어서 그렇다.

“막걸리를 사왔는데 부글부글 끓어서 넘치는 것 본 적 있죠? 발효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미숙주여서 그래요. 저희는 발효를 모두 마친 완숙주를 만들어요. 그래서 일반 막걸리와 달리 흔들어도 술이 쉽게 병 밖으로 넘쳐 차오르지 않아요.”

<호랑이배꼽막걸리>는 탁주 특유의 톡 쏘는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탄산이 있더라도 아주 연한 수준의 느낌만을 전한다. 그러나 일반 막걸리의 텁텁함 대신 산뜻하고 개운한 맛이 강하다. 쌀로 빚은 술이지만 과일 향과 같은 상큼한 맛이 감돌다 사라진다. 탁주임에도 청주와 같이 깔끔하고 탄산이 센 음료 못지않게 시원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대표는 “우리 양조장의 술들엔 이곳 앞마당의 지하 암반수를 사용해요. 이 일대의 지반이 화강암으로 이뤄졌는데 물맛이 부드럽고 깔끔하거든요. 원주에 물을 타서 만드는 막걸리인 만큼 특히 이 물맛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거예요.”

양조장에서만 파는 <소호>와 달리 <호랑이배꼽막걸리(720㎖·7000원, 350㎖·3500원)>는 자체 온라인 쇼핑몰(smartstore.naver.com/tigercalyx)에서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에선 2병부터 구입할 수 있으며 양조장에 직접 들르면 1병도 사갈 수 있다.

이밖에 양조장에서는 술 빚기 등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방문할 예정이라면 호랑이배꼽양조장(☎031-683-0981, 경기 평택시 포승읍 충열길 37)으로 사전 문의해 구매 가능한 술의 재고(특히 증류주)와 체험프로그램 일정 등 세부사항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평택=이현진, 사진=김병진 기자 abc@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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