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려島 비와島 좋다, 전북 군산 신시도길

입력 :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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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村스러운 걷기 여행] 전북 군산 신시도길

고군산군도 중 가장 넓은 섬 육지서 바다 향해 14㎞ 달려 도착

월영산 오르면 군도 풍경 한눈에 가을빛 물드는 섬, 흐린날과 어울려

몽돌해수욕장·하트동굴도 명소

 

그렇지 않아도 답답한 가슴에 장마와 태풍이 근심을 보탠 여름. 얼마간 더위도 기승을 부리더니 어느덧 풀잎엔 밤이슬이 맺힌다. 이제 갓 선선함이 찾아온 계절, 전북 군산시 옥도면에 있는 고군산군도의 신시도를 찾았다. 마음에 동동 뜬 상념들이 그러하듯 재색 바다 위 섬의 무리가 자리한 곳. 신시도에서 만난 초가을 풍경은 흐린 날과 마주해 더없이 조용했다. 운무가 내려앉아 차분한 섬을 정처 없는 듯 저벅저벅 걸었다.

초가을빛으로 물드는 월영산 풍경.

신시도는 고군산군도의 57개 섬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섬이다. 무녀도·선유도·방축도 등과 함께 고군산군도의 주요 섬으로 꼽힌다. 이곳은 과거 배 없인 이르지 못하는, 그야말로 섬이었다. 그러던 2005년 새만금방조제 공사와 함께 육지에서 차로 닿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군산 육지에서 바다를 향해 뻗은 14㎞ 길이의 도로를 내달려 도착한다. 주변에 드리운 부연 해무가 수평선 풍경을 아스라하게 덮었다.

너른 주차장을 기점으로 하는 신시도길은 섬에서 가장 높이 솟은 월영산을 오르는 구간부터 시작한다. 월영산은 해발 198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그러나 날카롭게 자리한 기암괴석 사이로 판판한 곳 하나 없는 오르막이 계속된다. 어느새 이마는 땀으로 송골송골하다. 그나마 허연 하늘이 햇볕은 가렸지만 빗방울이 한점 두점 목덜미로 떨어진다. 이마를 훔치길 이내 그만둔다. 풀내 녹은 숲길을 성큼성큼 오른다.

골짜기처럼 수풀에 폭 싸였던 길은 이윽고 탁 트인 능선으로 그 모습을 바꾼다. 비탈 산면이 아래로 펼쳐지고 어언간 높아진 고도만큼이나 고군산군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즈넉한 바다에 머물러 있는 섬, 그 풍경도 가히 그만이지만, 여기에 초가을 빛으로 바래져가는 월영산 풍경에 눈길이 머무른다. 본디 월영산은 월영단풍(月影丹楓)이란 이름의 오색 단풍이 이름난 곳이다. 아직은 단풍머리로 옅은 적갈색이 드문드문 비칠 뿐이지만 그 빛깔이 외려 흐린 경치와 퍽 어울린다.

신시도의 몽돌해수욕장에선 월영산을 넘은 뒤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손바닥 크기의 둥근 돌들이 오가는 파도를 와그르르 맞이하고, 밀려 나간 썰물로 드러난 바위틈엔 고둥과 조개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월영산의 기암괴석은 이곳 해변까지 넘어와 이색 풍경을 연출한다. 해안가 오른편에 있는 일명 ‘하트 동굴’은 이 기암괴석 절벽이 하트 모양으로 침식돼 생긴 해식동굴이다.

해안가 뭍에 사는 도둑게.

이후 신시도마을을 지나 닿는 남쪽 외곽길. 이 구간에서 신시도길을 마무리한다. 길의 첫머리에선 산 정상을 넘은 대신 이곳 끝머리에선 바다를 가까이 둔 산자락을 걷는다. 다만 지척에 바다를 뒀어도 먼저 시선을 끄는 건 촉촉이 젖은 수풀 속 땅 구멍이다. 해안가 뭍에 사는 도둑게 무리가 붉은 집게를 드러내며 이곳저곳에서 출몰하기 때문.

그렇게 눈을 요기하며 걷다보면 이윽고 트인 자리에서 다시 군도의 풍경을 마주한다. 지난여름의 흔적이 남은 양 낮게 깔린 구름이 바다를 뒤덮었다. 만일 한가을의 화창한 하늘이었더라면 아마 그 역시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열기가 지나간 뒤 남은 이 축축한 기운도 이맘때만 마주할 수 있는 찰나의 풍경이다. 몸은 이미 흠뻑 젖어 마음은 외려 개운하다. 투둑투둑 떨어지는 비에도 천천히 거닐며 섬과 바다를 바라본다.
 

군산=이현진, 사진=김도웅 기자 abc@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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