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숨 고르는 섬, 제주 서귀포 가파도

입력 : 2020-12-11
01010101201.20201204.001294543.02.jpg
가파도 해안길에서 만난 의자.

[村스러운 걷기 여행] 제주 서귀포 가파도

청보리 없는 이맘때

관광객 붐비지 않아 한적한 풍경만 가득

탁 트인 푸른 하늘과 윤슬 일렁이는 바다

오롯이 누리는 사치 

 

‘가파도 가봤어? (못 가봤어) 청보리밭 보았어? (못 가봤다니까)’

가수 최백호의 ‘가파도’란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청보리밭에 누워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는, 제주 본섬 모슬포 가까이 자리한 가오리 모양의 납작한 섬 가파도를 예찬하는 곡. 이 노랫말처럼 가파도는 봄철 파랗게 일렁이는 청보리밭 풍경이 멋진 곳이다. 예전엔 국토 최남단 섬인 아래편 마라도에 가려 인적이 드물었지만, 2009년 가파도 청보리축제가 열리기 시작한 뒤로 꽤 많은 이들이 찾는다.

단, 이맘때 가파도엔 청보리가 없다. 6월 이후 빈 밭이 된 보리밭은 이제 막 파종철을 맞아 휑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청보리가 없는 가파도엔 한적함이 가득하다. 봄철에 이곳 섬을 가려면 배를 타기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이 붐비지만, 지금 가파도에선 스치는 사람 대신 고즈넉한 풍경들을 마주한다. 사방에 펼쳐진 너른 빈 밭이 오롯이 한사람, 걷는 이의 것이다.

“청보리밭은 수확하고 다시 파종할 때까지 그냥 비워둬요. 가파도 사람들은 바닷일해서 5만원 벌지언정 밭일해서 10만원 벌려곤 잘 안하거든. 그래도 예전엔 이 빈 밭에 고구마도 심고 콩도 키웠는데, 여름철 태풍에 망치기 일쑤니 이젠 그냥 이렇게 비워두죠.”

전 이장이었던 마을주민 김동옥씨(66). 그에 따르면 이 빈 밭도 그리 얼마 남지 않은 풍경이다. 12월 상순 파종을 마치고 이내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면 그 초록과 함께 이곳엔 더 많은 사람이 찾아든다. 그럼 돌담길 아래 핀 해사한 갯쑥부쟁이도 해안가 오솔길로 철썩이는 파도도, 갯바위 너머로 부서지는 윤슬도 내 것만이 아니다. 그 사치를 놓친다.

해발 2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섬인 가파도. 그 작은 키만큼이나 더없이 큰 하늘을 이고 걷는다. 전깃줄 하나 걸리지 않은 곳. 탄소 없는 깨끗한 섬을 만들고자 전봇대를 모두 지중화했단다. 섬 전체가 고르고 판판한 덕에 탁 트인 시야에 걸리적거릴 것이 없다. 청보리 없는 때, 가파도를 가보면 한껏 더 너른 공백에 머물다 올 수 있다.

서귀포=이현진, 사진=김도웅 기자 abc@nongmin.com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기사